요즘 예전 영화들 다시 찾아보는 분들 많더라고요. 저도 요즘 좀 그런 분위기인데, 그중에 다시 꺼내 본 영화가 바로 <도둑들>이에요.
처음 나왔을 때 정말 엄청난 흥행을 했었죠. “한국 영화도 이런 게 가능하구나” 싶었던 작품이었는데, 지금 다시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 오히려 더 세련되게 느껴지더라고요.
범죄물, 액션, 반전, 캐릭터 케미까지 빠짐없이 잘 버무려진 영화. 그냥 스토리만 봐도 재밌는데, 그 속에 들어있는 감정선이랑 연출 디테일까지 살펴보면 정말 정성스러운 작품이에요.
이번 글에서는 ‘도둑들’이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어떤 점에서 여전히 회자되는 영화인지, 진짜 팬의 입장에서 한번 풀어볼게요. 부담 없이 읽어주세요. 저처럼 도둑들 좋아했던 분들, 그리고 아직 안 보신 분들께 작은 추천이 됐으면 좋겠어요.
1. 범죄물인데, 감정선이 살아있다
처음에 이 영화 개봉했을 때 저는 솔직히 전지현 나온다는 이유 하나로 극장에 갔었거든요. 근데 시작 10분 만에 “아 이거 진짜 제대로다” 싶더라고요. 단순히 보석 훔치는 도둑 이야기겠지 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흥미진진했어요.
보통 범죄 영화는 어떤 작전이 중심이 되잖아요. 누가 무엇을 훔치고, 어떻게 도망치고, 누가 쫓고 이런 구조요. 그런데 도둑들은 기본 구조는 비슷해 보여도 훨씬 더 캐릭터 간의 ‘심리전’이 짙게 깔려 있어요. 서로 협력하면서도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분위기. 정확히 말하면, 믿을 수 없다는 걸 서로가 다 알고 있는 상태에서의 협업이라고 해야 할까요?
팹시(김혜수)와 뽀빠이(이정재)의 미묘한 과거 감정, 예니콜(전지현)의 자기애 강한 자유로운 성격, 첸(임달화)과 앤드류(오달수)의 비즈니스적 관계 등, 다들 목적이 다르다 보니까 작전이 진행될수록 감정이 격해져요.
단순히 스릴만 있는 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지,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고, 지금은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지를 따라가다 보면 나중엔 ‘훔친다’는 소재보다 그 감정이 더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들이 진짜 인상 깊어요. 특히 팹시의 선택, 그리고 첸의 진심,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질 않았어요. 그냥 범죄 영화로만 보기엔 너무 아까운 감정들이 꽤 많이 담겨 있어요.
2. 액션도 스타일도, 그 시대 기준을 확 올려놨다
‘도둑들’ 하면 역시 액션이죠. 진짜 대놓고 말하면, 스타일리시하다는 말이 이 영화에 딱이에요. 마카오 카지노에서 벌어지는 와이어 액션, 그 장면은 아직도 제 머릿속에 박혀 있어요. 예니콜이 줄 타고 내려오는 장면… 하, 그건 진짜 한국 영화에서 보기 힘든 연출이었죠.
그 당시만 해도 한국 영화에서 그렇게 국제적인 감각으로 찍은 장면이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도둑들은 현지 촬영, 로케이션, 조명, 미술, 편집까지 다 잘 맞아떨어졌어요. 그냥 CG로 뭉뚱그린 느낌이 아니라, 실제로 그 공간에서 뛰고 움직이는 느낌이 확 들었죠.
그리고 인물 간의 거리를 조절하는 카메라 무빙이랄까? 예를 들어, 예니콜과 뽀빠이가 서로 말은 안 하지만 긴장감이 흐를 때, 카메라가 인물 뒤를 천천히 따라가거나, 한 명은 포커스 아웃된 채로 처리되는데요, 이런 게 다 연출력에서 나오는 섬세함이더라고요.
편집도 진짜 촘촘하게 잘 됐고요. 한 장면 한 장면이 지루하지 않게 구성돼 있어서 러닝타임이 2시간이 넘는데도 템포가 너무 좋았어요. 거기다 배경음악도 촌스럽지 않고 세련되게 깔려서, 극의 분위기를 확 끌어올렸고요.
요즘 액션 영화들 보면 때로는 너무 과하고, 때로는 CG에 의존해서 질감이 없는데, 도둑들은 그 중간을 잘 지킨 느낌이에요. 리얼함과 스타일을 동시에 잡은 액션, 이게 도둑들의 진짜 강점이죠.
3. 명대사에서 느껴지는 캐릭터의 깊이
좋은 영화는 보고 나서 한두 줄의 대사가 기억에 남아요. 도둑들도 그런 대사가 꽤 많아요.
예를 들어, “언제부터 그렇게 예뻤냐” 이건 뽀빠이가 팹시에게 건네는 말인데요, 그냥 농담처럼 들릴 수 있어도 그 안에 감정의 이력이 다 담겨 있어요. 그 말 한마디에 과거의 사랑, 배신, 그리고 현재의 씁쓸함까지 느껴지잖아요.
그리고 예니콜의 “나 예니콜이야. 이런 거 잘해.” 이 대사는 그냥 ‘간지’ 그 자체예요. 자기 실력에 대한 확신, 자존감, 자신감이 동시에 담겨 있죠. 그냥 멋있고 당당한 여성 캐릭터를 완성시키는 대사예요.
첸이 앤드류에게 던졌던 마지막 말도 그렇고요. 캐릭터 하나하나가 대사로 자기 색을 분명히 보여준다는 건, 각본이 정말 잘 짜였다는 뜻이겠죠.
그런데 이 대사들이 단순히 ‘기억에 남는다’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이 배어나오는 대사들이라서, 다시 봐도 여전히 울림이 있어요.
결국, 도둑들은 스토리, 액션, 감정, 캐릭터, 연출 전부 고르게 뛰어난 영화였어요.
그 해의 흥행작이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유효한 작품이라는 게 진짜 중요하죠.
지금 보면 예니콜의 당당함이 더 멋지게 느껴지고, 첸의 인간적인 면모가 더 짠하게 다가오고, 뽀빠이의 감정은 더 애잔하게 느껴져요. 시간이 지난 만큼, 보는 사람의 감정도 깊어지니까요.
혹시 이 영화 아직 안 보신 분 있다면, 진심으로 추천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예전에 봤더라도, 오늘 밤 조용히 한 번 더 보세요. 아마 그때와는 또 다른 장면이 마음에 남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