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타짜’를 봤을 때가 고등학교 때였어요. 친구가 “야, 이거 무조건 봐야 돼” 하면서 CD를 건넸죠. 그땐 영화의 디테일 같은 건 잘 몰랐고, 그냥 재밌다, 배우들 연기 죽인다, 그 정도였어요. 근데 이상하게 시간이 지나도 이 영화는 머릿속에 계속 남더라고요. 그리고 결국… 저는 이 영화를 다섯 번이나 봤습니다. 진심으로 말하면,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게 다르고, 새롭게 보이는 디테일이 있어요.
1. “묻고 더블로 가”만 기억한다면, 반은 놓친 거예요
요즘 ‘타짜’ 얘기하면 다들 곽철용 이야기 먼저 꺼내요. “묻고 더블로 가” 그 명대사 하나로 사람들은 다 웃는데… 사실 이 장면은 웃기기만 한 장면이 아니에요. 오히려 등골이 서늘해지는 장면이죠.
곽철용이 딜러랑 눈을 마주치면서도 고니를 살피는 그 시선. 어떻게 보면 유쾌한 조폭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냉철하고 무서운 사람이라는 게 거기서 드러나요. 배우 김응수가 그 눈빛 연기를 기가 막히게 했죠. 그리고 그 장면 조명이 딱, 음영이 얼굴 반을 가리잖아요. 그거 완전 연출의 의도예요. 두 얼굴을 가진 사람, 혹은 본심을 숨기는 인물. 이런 걸 상징하는 디테일이에요.
그때는 몰랐는데, 다시 보니까 그 장면 하나로 곽철용의 캐릭터가 완성되더라고요. 그냥 “밈”으로만 소비하기에는… 좀 아깝죠.
2. 고니의 변화를 따라가다 보면, 나도 같이 무너지는 느낌
고니는 사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이에요. 처음엔 순진하죠. 억울해서 도박판에 뛰어든 것도 사실, 돈 때문이라기보다 자존심 때문이었어요.
처음에 고니가 짝귀한테 사기당하는 장면, 그거 그냥 넘기면 안 돼요. 눈빛, 음악, 짝귀의 사소한 손짓까지 다음 장면으로 이어질 복선이에요.
그리고 가장 인상 깊은 변화는… 눈빛이에요. 처음엔 멍하니 판을 바라보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져요. 무서울 정도로 냉정해지죠.
마지막 판에서 “이제는 내가 더 잘 알겠어”라고 말할 때, 그 한 마디에 그동안 겪은 모든 감정, 상처, 배신이 담겨 있어요. 그 장면에서 저는 좀 찡했어요. 아, 이 사람이 결국 이 판에 물들었구나… 싶더라고요. 그게 좀 슬펐어요, 진짜로.
3. 타짜가 타짜인 이유, 복선과 상징이 쌓아 올린 설계도 같은 영화
한 번 보고 끝내면, 이 영화의 50%도 못 느끼는 거 아세요? 진짜입니다. ‘타짜’는 디테일을 씹어먹는 영화예요. 거의 설계도처럼 짜인 영화라고 봐야 돼요.
예를 들면, 평경장이 고니에게 “사람 마음이 제일 무섭다”고 말하죠. 그게 그냥 인생 조언 같지만, 사실 영화 전체의 메시지를 압축한 핵심 대사예요.
그리고 그 캐릭터가 후반에 죽는 것도 사실 전반부부터 계속 암시가 나와요. 대사, 배경, 카메라 위치, 고니와의 거리감 같은 것들이요. 이걸 한 번 봐서는 절대 못 느껴요. 두세 번은 봐야 “헉, 이게 복선이었어?” 하게 되죠.
심지어 복선의 연결 방식도 장난 아니에요. 초반에 등장한 인물이 후반에 다시 나오거나, 대사 한 줄이 시간 지나서 의미가 바뀌고요. 예를 들어, “돈은 사람을 바꾸지 않아. 그냥 본색을 드러나게 할 뿐이지” 이런 류의 대사는 들을 땐 무심하게 흘러가지만, 다 보고 나면 계속 생각나요. 이 영화는 그런 말들이 진짜 많아요.
4. 대사도, 음악도, 조명도… 다 이유가 있어요
어쩌다 보니 다섯 번이나 본 영화지만, 볼 때마다 새로 발견하는 게 있어요. 예를 들면, 조명.
장면마다 분위기 따라 색이 확 달라져요. 고니가 처음 짝귀한테 속을 때는 약간 누런빛, 불안하고 탁한 느낌이 들고요. 아귀랑 마지막 판을 벌일 땐 조명이 거의 무채색에 가까워요. 사람의 표정, 긴장감을 더 도드라지게 하려고 일부러 그렇게 연출한 거죠.
그리고 배경음악도 너무 잘 썼어요. 긴장감 줄 땐 소리를 거의 없애버리거나, 심장박동처럼 둔탁한 음 하나만 깔아요. 그게 훨씬 더 몰입을 끌어내더라고요.
진짜 보면 볼수록 “아 이거는 정말 작정하고 만든 영화구나” 싶어요. 그냥 대충 만든 영화 아니에요. 각본, 연출, 연기, 조명, 음악, 미술 전부가 정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어요.
타짜는 다시 봐야 진짜 보여요
이 영화가 2006년작이라는 게 솔직히 안 믿겨요. 지금 봐도 전혀 안 촌스럽고, 오히려 더 세련돼 보여요. 그만큼 디테일이 살아있고, 구조가 촘촘하다는 거죠.
진짜 이 영화는요, 다시 봐야 진짜가 보입니다. 첫 번째는 재미로, 두 번째는 디테일로, 세 번째는 인물로, 네 번째는 상징으로, 다섯 번째는… 그냥 감정이 와요. 먹먹하게.
저는 그래서 이 영화가 그냥 도박 영화, 재밌는 조폭 영화 그 이상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진짜 사람을 해부하는 영화예요. 그들의 욕망, 선택, 책임, 배신… 그 모든 게 다 들어 있어요.
혹시 한 번만 보고 끝낸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더 보세요. 진짜 달라요. ‘타짜’는 두 번째부터가 진짜 시작이에요. 그리고 언젠가 세 번째 볼 때, 당신도 그 디테일들에 소름이 쫙 돋을지도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