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 감독이 연출하고 큐브릭의 기획이 담긴 영화 AI는 단순한 SF 영화가 아니에요.
보는 내내 마음이 먹먹해지면서도, 끝나고 나면 생각이 길게 남는 작품이랄까요.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무겁지만도 않아요. 되려 보는 동안 몰입감이 어마어마하죠.
한마디로 말하자면… 이건 감성 SF의 정석이예요. SF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아니 조금이라도 SF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봐야 할 영화예요.
1. “사랑하는 로봇”이라는 말, 처음에는 낯설었어요
처음 영화 AI: Artificial Intelligence의 줄거리를 들었을 땐 솔직히 조금 당황했어요.
"사랑을 할 수 있는 로봇 소년이 등장한다"고요?
뭐랄까, 이 설정만 보면 약간 감성팔이 같기도 하고, 뻔한 얘기 같기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영화를 보기 시작하고 20분도 안 돼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죠.
주인공 ‘데이빗’은 인간처럼 생긴 인공지능 소년이에요. 엄마의 사랑을 받고 싶어 하고, 버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질투도 하고, 외로움도 느껴요.
이런 감정들을 표현하는 그의 모습이 너무 진짜 같아서, 보면서 ‘얘가 로봇이라는 사실’을 계속 잊게 돼요.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중반부쯤 가면 어느 순간 진짜 이 아이를 응원하고 있더라고요.
“엄마가 널 다시 안아줬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이 자연스럽게 드는 거예요.
데이비드가 느끼는 감정이 단순한 코드나 알고리즘이 아니라 진심처럼 느껴지는 지점.
바로 그때부터 이 영화는 그냥 SF 영화가 아니라 ‘사람 이야기’로 바뀌는 것 같았어요.
그게 참 묘하더라고요.
2. 큐브릭의 차가움, 스필버그의 따뜻함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 중 하나는, 두 거장의 스타일이 공존한다는 점이에요.
스탠리 큐브릭은 이 영화를 수십 년 전부터 기획해 왔고,
스티븐 스필버그는 그 유산을 물려받아 결국 완성했죠.
이 둘은 성격도 스타일도 너무 다른 감독들이에요.
큐브릭은 차갑고 계산적인 스타일이라면, 스필버그는 감성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이야기를 잘 풀어내죠.
그래서인지 AI는 굉장히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요. 감정적으로 막 끌어당기다가도, 문득 아주 철학적인 질문을 툭 던지기도 하거든요.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후반부, 데이비드가 엄마를 찾기 위해 끝없는 여정을 떠나는 장면들이에요.
그 과정에서 로봇들이 고철처럼 버려지는 시장도 나오고, 인간에게 착취당하는 로봇들도 나와요.
거기서 데이빗이 던지는 눈빛은 정말 잊히질 않아요.
“나는 진짜 사랑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버리지 말아 주세요.”
이런 말을 하는 것 같아서, 보는 내내 울컥했죠.
그리고 마지막.
정말 많은 분들이 이 장면 때문에 이 영화를 잊지 못한다고 하더라고요.
데이비드가 2000년 동안 물속에서 ‘엄마’를 기다리던 그 장면.
그걸 보고 있자면… 이게 로봇의 이야기였는지, 인간의 이야기였는지 경계가 무너져요.
그저 사랑받고 싶었던 존재의 이야기로 남게 되죠.
3.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비주얼
이 영화가 개봉한 게 2001년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20년도 훌쩍 지난 영화잖아요.
그런데 정말 놀랍게도, 지금 봐도 화면이 촌스럽지 않아요.
오히려 몇몇 장면은 지금 SF 영화보다 더 감각적이에요.
미래 도시의 디자인, 로봇들이 있는 세계, 인형극처럼 표현된 인공지능 쇼…
이런 장면들은 굉장히 독창적이고, 디테일하게 만들어졌다는 게 느껴져요.
카메라 워킹도 세련됐고, 조명도 아주 섬세하게 쓰였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의 연기요.
정말 대단했어요.
아이의 순수함과 동시에 기계적인 무표정, 그 속에 숨은 감정까지.
어린 나이에 저렇게 복잡한 감정을 연기해 낸다는 게 믿기지 않았어요.
그의 눈빛은 지금 다시 봐도 압도적이에요.
이런 연출과 연기가 있었기 때문에, AI는 단순히 ‘좋은 영화’에서 멈추지 않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영화’가 된 것 같아요.
기계의 이야기, 결국 인간의 이야기
AI는 기계가 인간을 닮아가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가 ‘인간답게 산다는 게 무엇인가’를 묻는 영화예요.
감정을 느끼는 게 인간일까요?
사랑을 하고, 기억을 붙잡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마음이 인간성을 정의하는 걸까요?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아주 조용히 던지고 있어요.
그래서 더 깊이 와닿고, 더 오래 남는 것 같아요.
SF 덕후라면 분명 기술적 상상력도 좋아하시겠지만,
그 안에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를 원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진심으로 이 영화를 추천드리고 싶어요.
아직 안 보셨다면, 이 주말에 조용히 혼자 불 꺼놓고 보시는 걸 추천드려요.
만약 예전에 봤던 영화라면, 지금 다시 보면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올지도 몰라요.
특히 요즘처럼 인공지능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시대에는 더더 욱요.